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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칼럼>하나님의 최선/김혜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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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의목적 작성일13-08-22 15:44 조회9,2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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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칼럼>



김혜란 회장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사도행전 7장 55,56절)


사도행전 7장 54절~60절에는 스데반의 순교 장면이 나온다.

왜 하나님은 초대교회의 많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죽도록 내버려두셨을까?

스데반의 죽음과 함께 예수님의 죽으심을 생각한다.

예수님도 잡히시기 전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아버지의 뜻이라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시라고 간곡히 기도하셨건만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말았다.

고통 받고 부르짖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들이 고통당하는 것 보다 차라리 내가 십자가를 지는 것이 낫지~

그러나 십자가가 최선이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진 후 부활이라는 영광이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죽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부활, 그리고 그 죽음 없이는 사단의 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는 역사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었다.

스데반은 예수를 모함하고 복음을 비난하는 자들에게 누가 율법을 거역하는 자인지 복음을 변증하다가 돌에 맞아 죽게 되었다.

스데반의 죽음을 허락하신 하나님. 그것도 하나님의 최선이었다.

스데반이 죽어가면서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은 그에게 당당하게 순교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부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스데반을 살려주시진 않았지만 하늘을 열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고, 예수님이 스데반의 죽음을 지켜보시며 하나님의 우편에 편히 앉아계신 것이 아니라 안타까워 일어나 서 계신 것을 보여주셨다.

스데반의 사명은 거기 까지였다. 그리고 그의 죽음의 열매는 바로 이 현장에 사울이라는 청년을 준비하신 것이다. 스데반의 죽음의 열매로 바울이 등장한다. 58절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 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스데반의 죽음을 목도한 바울, 어떻게 그 상황에서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을 내며 평안하게 아니, 자신을 죽음에 몰고 간 자들을 위하여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죽어갈 수 있을까?

그의 죽음을 본 사울, 잘못된 열정과 무지한 열심으로 예루살렘에서 흩어진 성도들까지 잡기 위해 찾아다니면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스데반의 죽음을 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도행전 26장 14절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 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억지로 자신에게 확인하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성도들을 핍박하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이 어리석고 무모하며 불가능하다는 바울 자신의 양심과 싸우는 상태를 묘사한 것이라 생각한다. 바울은 유대교적 열정으로써 기독교 핍박에 앞장섰지만 날이 갈수록, 특히 스데반의 죽음을 목격하고서 스스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느끼며 점차 혼란과 번민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스데반의 죽음은 바울이라는 큰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스데반의 사명은 순교 까지였다. 스데반의 순교는 하나님의 최선이었다.


나의 남편의 죽음을 생각하였다. 우리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나의 남편의 죽음을 왜 허락하셨을까? 이것은 내가 믿는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모태 신앙이었지만 35세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한 후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주의 일을 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행복해 했던 그를, 우리 아이들과 나를 위해서라도 살려주셔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왜 39세의 젊은 나이에 그를 데려가셔야 했는지, 주를 위해 자신을 드릴 각오까지 되었던 그인데~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스데반의 죽음을 묵상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 내 남편의 사명은 거기까지였다는 것이다.

젊은 그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다. 어릴 때부터 상처받은 작은 새처럼 자신의 마음을 꽁꽁 닫은 채 남에게 열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마음을 열지 못했던 김혜란을 감동시키어 결혼하기 까지 6년이 걸렸다. 그뿐 아니라 결혼 후에도 이기적인 아내를 무조건 사랑으로 보호하고 존중해 준 그의 사랑은 나에겐 과분한 사랑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두 사람이 주 안에서 한 비전을 가지고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고자 하는 꿈을 갖기도 하였다. 그의 죽음을 맞게 된 나에게 가장 큰 상실감은 바로 함께 이루고자 했던 그 꿈을 상실하였다는 것이었다.

벌써 25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지금 나는 외로운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고자 한 우리의 꿈대로 다비다자매회 사역을 하고 있다.

남편의 죽음을 경험한 나에게 분명한 사명이 실현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싱글맘 사역. 그것은 사별의 상처를 당하지 않은 사람은 할 수 없는 사역이다.

남편의 죽음의 열매가 바로 다비다사역이었다. 남편의 죽음은 하나님의 최선이었다. 또 지금 내가 싱글맘 사역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최선이다.

다시금 나에게 부여하신 사명에 대한 각오가 새롭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최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은 언제나 최선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죽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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