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 그리고 흘려보냄(시133:1~3)
이영복 장로(본회 사무국장)
1, 들어가는 말
지난 5월 한 달, 그리고 이 달 초까지도 그렇게 곱게 피어 있던 장미꽃들이 다 거의 다 져버렸네요. 제가 1979년 6월에 논산훈련소로 입대를 했는데 그때 썼던 병영일기 한 부분이 생각납니다. “이른 아침 길바닥에 떨어진 장미꽃잎을 주우며 훈련소에서의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니고 강제로 시켜서 하는 아침 청소지만 얼마나 낭만적인가?”장미는 그렇게 한 군인의 굳은 마음에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붉은 장미꽃잎에 이슬방울들이 맺혀 있는 풍경.”이라고 답할 겁니다. 이것은 청년시절부터 ‘아름다운 것들’이란 가요와 ‘저 장미 꽃 위에 이슬’이란 찬송가를 좋아했기에 그 가사들에서 받은 정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괜스레 장미꽃에 맺힌 이슬방울을 보면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찡해오는 것 있죠? 오늘은 장미 이야기와 이슬 이야기, 보다 정확히는 장미꽃에 맺힌 이슬방울 이야기를 하면서, ‘연합, 그리고 흘려보냄’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장미 이야기는 제가 쓴 ‘안젤라 장미에게’라는 시를 중심으로, 이슬 이야기는 오늘 본문 시편 133편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 안젤라 장미에게서 다비다자매를 보고
먼저 장미 이야기입니다. 2021년 5월 다비다자매회 정기모임에 가던 길, 어느 담장에 기대어 핀 붉은 안젤라 장미가 하도 고와서 시를 한 편 썼습니다. 안젤라 장미들이 정다이 뭉쳐서 피어 있는 풍경이 마치 다비다자매들을 보는 듯한 영감을 받아 즉흥적으로 썼었지요. 제목은 ‘안젤라 장미에게’였고 ‘안젤라’ 세 글자로 시작하는 삼행시였죠. 작년에 낸 다비다 시선집 <여백>에도 실었던 시입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 시를 조금 수정하여 가사로 쓰고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어보았습니다. 내년 1월 다비다자매회 창립 30주년 기념으로 뮤지컬 연극, ‘욥바항의 사랑’을 계획하고 있는 것 아시지요? 제가 뮤지컬에 쓸 곡들을 준비하고 있잖아요. 2021년 8월 정기모임 설교를 하면서 선보였던‘ 욥바항의 사랑’과 지난 4월 정기모임 때 불렀던‘방황, 소라껍질 속의 나 ’에 이어 세 번째 곡이 될 것 같습니다. 30년을 회고하고 또 새로운 30년을 바라보는 곡, 한 편 정도 더 만들고, 그 외 우리에게 친숙한 가요나 찬송 곡을 더해 각본을 쓰고 우리 다비다 자매들에게 배역을 맡겨 공연에 올리고자 합니다.
노래 한 번 불러볼까요?
안아줘도 되나요? 안 된다고요? 가시에 찔린다고요?
젤 예쁜 만큼 젤 여린 그대 사랑스런 안젤라여.
라선(螺線) 홀로 감을 손 그대에게 없으니 내가 어떡해야 하죠?
등이라도 내주고 싶은 이내 마음 오, 그대는 아시나요?
* 2절 : 젤 예쁜 만큼 젤 여린 그대 사랑하는 다비다여
깊은 상실감을 경험한 다비다자매들이 말을 걸어옵니다. “자칫하면 가시에 찔리니 너무 다가오지 마세요.”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아이들 키우는 그들은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여리고 여립니다. 그래도 오롯이 주님의 신부로서 살아가겠다며 믿음 안에서 사는 그들이기에 꽃처럼 곱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뭉쳐서 꽃을 피웁니다. 가늘고 긴 줄기를 가졌지만 나팔꽃처럼 다른 것을 단단히 감으며 홀로 자신을 든든히 보호해줄 넝쿨손이 없습니다.
1994년 다비다자매회의 설립 때부터 지켜보고 2013년 사단법인이 되고서 초대 이사장을 맡은 나로서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일지 늘 생각해 오다가 답을 얻었습니다. 그저 말없이 가만히 그들의 울타리가 되고 담벼락이 되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노래는 다비다자매들과 한 가족이 된 저의 그런 심정을 담은 노래입니다.
3. 시편 133편, 연합과 흘려보냄의 영성
다음으로 이슬 이야기입니다. 중년을 훌쩍 지나 제가 안젤라 장미꽃들이 뭉쳐서 핀 모습에서 다비다자매들을 연상하고 쓴 시는 자연스레 오늘 본문 시편 133편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시편 133편이 겹쳐지면서 안젤라 장미꽃잎에 이슬이 맺힌 풍경이 떠오르니 젊었을 때와는 또 다르게 가슴을 울리는 풍경으로 다가왔습니다. 단순히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영적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이제 시편 133편에 담긴 연합의 비밀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십시다. 제가 다비다 정기모임 설교 때마다 우리 다비다의 영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데 오늘은 연합의 영성, 흘려보냄의 영성이야말로 정말 아름다운 다비다 영성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연합의 영성은 흘려보냄으로 거룩해지고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시편 133편 기자는 흘려보냄을 설명하면서 두 가지를 비유로 들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보배로운 기름이고 다른 하나는 이슬입니다.
1) 아론의 보배로운 기름이 흐르는 성령 공동체
먼저 시편 133편 2절에서 제사장을 대표하는 아론의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을 지나 옷깃에까지 흐르는 모습은 신약에서 왕 같은 제사장에게 부어진 성령의 기름부음을 상징합니다. 형제가 연합하는 것이 곧 아름다운 성령 공동체이고 예배공동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공동체로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함께 울고 웃는 교제를 나누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는 공동체 모두가 부드러운 흘려보냄을 통해 같은 축복에 동참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2) 헐몬의 이슬이 내리는 생명 공동체
다음으로 3절의 ‘헐몬의 이슬’은 생명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헐몬산은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 2,800m가 넘습니다. 헐몬산의 정상은 만년설로 덮어 있으며, 눈도 녹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아서 산의 주변은 말라 있고,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나무들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헐몬산에서 차가운 지중해의 서풍과 뜨거운 사막의 동풍이 충돌하면서 대기 중의 수분을 냉각시켜 밤이면 이슬이 비 오듯 내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슬방울이 모여 대지를 적시며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만든다고 합니다. 헐몬의 이슬같이 흐르면 생명의 땅이 되지만, 흐르지 않으면 죽음의 땅이 된다는 의미와 함께 형제의 연합은 곧 생명 공동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는 말씀이 알려주듯이 영생으로 이어지는 생명, 바로 그분과의 진정한 연합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3) 연합은 단순히 도덕적 의미가 아닌 영적 의미를 강조
그런데 성도들의 진정한 연합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1절은 진정한 연합의 의미를 “눈은 손더러 네가 쓸데없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비유로 표현합니다. 그런 한몸의 의미가 진정한 연합이라는 거죠.
나아가 기독교가 단순히 인간적인 사랑이 아닌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교회의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단순히 윤리적, 도덕적 실천을 강조하는 종교가 아니라 진정한 생명, 영생을 흘려보내는 영적 종교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이것은 우리의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거룩하고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는 형제 사랑이 영생을 얻은 증표라는 말씀과도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라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일3:15)
4. 그분과의 입맞춤, 다비다의 입맞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다비다자매회는 주님 안에서의 하나가 되는 연합의 신비를 통해 은혜의 이슬방울 촉촉이 맺혀 있는 아름다운 안젤라 장미들입니다. 상실감의 상처가 가져다 준 인생의 쓴 뿌리도 사라지고 날카로운 가시도 녹아내린 장미꽃입니다.
그러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다. 제일 여린 만큼 제일 예쁜 존재들입니다. 우리 다비다자매들이야말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영적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성경은 깊은 연합에 대해 신랑과 신부의 입맞춤을 비유로 설명해줍니다. (이하 별첨 파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