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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이 깨끗해야(박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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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0-10-14 14:26 조회13,1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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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이 깨끗해야

 

               박광철 목사 (SALT House 선교회 대표, 미국 캘리포니아 거주)

 

어느 설교자가 두 개의 컵을 가지고 강단에 섰습니다. 하나는 흔한 스티로폼으로 만든 일회용 컵이고 다른 하나는 예쁜 도자기 컵이었습니다. 설교자는 강단 앞에 그것을 나란히 놓고 회중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가운데 어느 컵을 사용하겠습니까?” 너무도 당연한 질문을 하기 때문에 회중은 잠시 가만히 있더니 예상대로 곧 도자기 컵을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교자는 두 컵을 들어 올려서 무엇인가를 쏟았습니다. 그런데 스티로폼 컵은 깨끗한데 도자기 컵에서는 휴지를 포함해서 약간의 쓰레기가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속았다는 눈치였지만 설교자의 의중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겉만 보고 그것이 좋고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속을 들여다 봐야 합니다. 겉모양이 아무리 멋지고 비싸게 보여도 속에 더러운 것들이 가득 있으면 결코 깨끗한 일에 쓸 수 없습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이 그것은 잘 말해줍니다.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즉 아주 평범한 일에) 쓰이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디모데후서 2:20-21)

 

이 구절에서 ‘큰 집’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그릇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에 직접 스스로 모든 일을 혼자 하실 수도 있지만 허물이 많은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 것은 정말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금그릇이나 은그릇을 많이 쓰신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실제로 부엌에서 많이 쓰이는 그릇은 금이나 은으로 만든 그릇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질그릇이나 나무그릇 그리고 요즘에 흔한 플라스틱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쓰시는데 있어서는 그릇의 종류나 재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깨끗한가 하는 것입니다. 비록 허름한 질그릇이라도 속이 깨끗하면 그것을 쓰십니다. 한국에서 김장철을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엔 김치도 마켓에서 사서 먹지만 그래도 여러 지방에서는 겨울철이 오기 전에 김장을 담급니다. 그런 날에는 집안에 있는 그릇이란 그릇은 다 동원됩니다. 일이 많기 때문에 그릇이 작고 큰 것이 문제가 아니라 깨끗하기만 하면 다 씁니다. 아무리 그릇이 부족해도 도자기로 만든 이동식 화장실과 같은 “요강”(이런 용어를 여기에 사용해서 죄송합니다!)을 음식 만드는 일에 쓰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작은 종지라도 일이 많을 때에는 쓸모가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겉모양은 멀쩡하고 훌륭하게 보이지만 속은 지독하게 부패하고 곪아서 악취가 나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실 우리는 사람의 외모 밖에 볼 수 없고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종종 외모에 속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어 정책을 결정하기도 하고 나라의 방향을 좌지우지한다면 정말 골치 아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뇌물을 주고 높은 자리를 얻거나 부정직한 방법으로 부동산 투기를 하는 부정과 부패가 심한 사람들이 군대의 지휘관의 자리에 앉아서 국방을 책임진다고 하면 누가 마음을 놓고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또 요즘에 흔히 언급되고 있는 “내로남불”이 되어 자기의 잘못은 요리 조리 멋지게 감추고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서 공격한다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신은 자녀가 보다 좋다고 알려진 학군을 얻기 위해서 위장전입을 했으면서도 위장전입자를 처벌하라고 호통을 친다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요? 심지어 관련법규를 바꿔서라도 자기의 부정을 감추거나 불의를 합리화한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그런데 피할 수 없는 불리한 증언이 나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것은 누군가가 조작한 것입니다”라고 뻔뻔스럽게 발뺌을 하는 것을 봅니다. 그 뿐 아니라 부정직한 사람들이 기업과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에서 권세를 부린다면 그 기업과 후대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팬데믹 기간 중에 나는 다른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더 생겨서 다양한 책들을 읽는 중에 최근에는 역사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역사책은 “승자”가 기록한 것들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전쟁이나 어떤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은 역사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긴 자들이 그것을 후대에 알리고 자랑하기 위해서 기록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보니 어릴 적에 우리가 배운 많은 역사적 사실이 미화되었거나 조작되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소위 유명한 인물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것도 크게 확대하여 굉장한 일을 한 것처럼 꾸미거나 심지어 없는 일도 있는 것처럼 조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온전히 객관적으로 기록된 역사책이라는 것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대는 그나마 내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배운 것이 없습니다. 얼마 전 어느 글에 보니 한국의 대기업에 취직한 청년이 한국동란이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는 글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역사 과목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 관목인 경우가 많다고 하니 그런 것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아마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지금도 잘못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니 우리의 후대는 무엇을 배울 것인지 두려움이 생깁니다. 유대인들이 왜 세계적으로 뛰어납니까? 실제로 어느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지능 지수가 그들보다 더 낫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유대인들이 세계의 대기업과 과학과 학문에 있어서 선두 자리를 지킬까요? 그들에게는 강력한 역사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수 천 년 동안 내려온 대로 지금도 매주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키고 일 년에 한번 씩 유월절을 지키면서 지난날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적인 사실을 되새김합니다. 그들은 세계에서 역사의식이 가장 강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지점에 서 있습니다. 자기가 더러워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더럽기 때문에 더러운 줄 모르고 비뚤어져도 비뚤어진 줄 모르는 세대 같습니다. 나는 종종 재미있는 질문을 해 봅니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우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거꾸로 매달려 있을 텐데 어떻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까?” “중력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물구나무를 서면 피가 머리 쪽으로 쏠리기 때문에 힘든데 왜 아무도 그 사실에 대해서 묻지 않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과 건축물과 물건이 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서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인간의 겉모습 밖에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속사람을 꿰뚫어 들여다보십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예레미야 17:9-10). 그러나 바닥이 보이지 않는 진흙탕 속에서 깨끗한 연꽃이 자라는 것처럼, 온 세상이 죄악으로 물들고 악이 판을 치는 시대에도 하나님과 동행한 의인이던 노아처럼 우리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 깨끗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깨끗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우리의 지난날의 잘못을 없애실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1:9). 예수님께서 왜 바리새파 사람들을 심하게 질책하셨습니까? 그들은 구약의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고 기도도 많이 하고 금식도 자주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대접의 겉은 깨끗하되 속에는 악독이 가득하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3:25).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에 쓰시려고 깨끗한 그릇을 찾으십니다. 당신의 배경이 어떠하고 과거가 어떠하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그 영혼이 깨끗하고 손발이 주님 쓰시기에 합당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이나 은그릇이 되지 못했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비록 값이 싼 질그릇과 플라스틱그릇이라도 예수의 보혈도 속속들이 정결하게 되어 이 중요한 시대에 하나님의 선한 일에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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