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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눈으로 보라/ 안석문 이사(아침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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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oner 작성일08-10-04 08:35 조회24,6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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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눈으로 보라
(창 22:1~18)

                                                                                      안석문 이사(아침교회 담임목사)

  사람은 눈이 중요하다. 믿음은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한다. 그가 나면서부터 탁월하고 강력한 믿음을 가져서가 아니다. 단지 인류 최초로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자기 앞에 찾아온 상황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받아들인 첫 번째 사람이다.
  본래 그는 믿음과는 거리가 먼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우상을 깎아 생계를 유지하는 아버지 밑에서. 그런데 어느 날 음성을 듣게 된다.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1~2)
  75세 때까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성을 믿고 나아간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11:8)
  왜 일까? 육체의 눈으론 볼 수 없는 분이 불렀고, 현재는 보이지 않는 장차 이루어질 복에 대한 말씀이었지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땅을 향해 가라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이 보고 계신 땅을 함께 바라보며 나아갔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믿음의 순서는 약속을 던지고, 믿음을 키우고, 복을 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믿음이 언제 성장하는가? 시험과 연단을 통과하면서다.
  애굽에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아내를 잃을 뻔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개입으로 아내를 찾아오기는 하지만 수치를 당한다. 그 이후, 아내 사라는 시간이 지나도 수태하지 못하고, 여종 하갈에게 들어가라 권하자 그 말대로 하여 서자 이스마엘을 낳는다. 이것 때문에 나중에 두 여자 틈에 끼어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나? 하지만 실수와 어리석음을 수없이 반복하며 시험과 연단을 거친 후에 그의 눈도 달라진다. 사람을 보는 눈에서 하나님을 보는 눈으로.
  왜 믿는 자들은 꼭 이런 연단과 시험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가?
하나님과의 언약의 말씀 때문이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창22:17) 결국 복 주려고 고난을 통해 믿음을 키우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래야 딴 소리 안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높인다. 믿음이 없으면 금방 배은망덕해지는 것이 우리 인간 아닌가?
  본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세우는 마지막 시험이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22:2)
  한마디로 딜레마(dilemma)다. 하나님은 그런 명령을 내릴 분이 아니다. 크고 창대케 되는 복, 그걸 이루어줄 후손이 아들 이삭이고, 이삭의 씨를 통해 하늘의 뭇별과 같은 자손을 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이다. 이삭은 아직 십대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니,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딜레마다.
  놀라운 건 하나님의 이런 명령에 아브라함이 단 하루도 지체하지 않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그 명령을 실행에 옮겼다는 점이다. 실수도 두려움도 많았던 현실적인 그였지만, 언제나 말씀이 떨어지면 속히 실행하는 데 장점이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망설이고 계산하고 주춤대다가 믿음이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복을 잃고 마는가?
  하나님은 이런 자를 당신의 친구, 또는 동역자라 부르신다. 친구, 동역자가 무언가? 눈높이를 같이 하고,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고마운 사람. 그래서 친구와 동역자에겐 비밀이 있을 수 없다.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창18:17)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같은 곳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친구, 동역자다. 
  시험 당할 때, 나의 시선을 흩을 만한 것들을 빨리 제거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움직였다. 심지어 아내 사라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산에 가서도 종들은 따라오지 말고 밑에서 기다리라 했다. 이 비상식적인 일을 그냥 놔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제단 위에 아들을 눕힌 아브라함의 손에는 칼이 들렸다. 그리고 이삭의 목을 향해 그 칼이 내려쳐지려는 순간, 오히려 놀라서 급한 분은 하나님이셨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22:11-12)
  하나님 경외함 없이는 어떤 시험도 통과할 수 없다. 보이는 상황보다, 사람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면전의식은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가장 찾으시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기가 하나님 경외한다는 걸 어떻게 보여드렸는가? 가장 아끼는 것을 드렸다. 그가 이걸 보여드렸을 때, 쏟아 부어주시려는 하나님의 복의 창고가 활짝 열렸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 가서 이삭을 바치고 나서야 이걸 깨닫는다.
“무엇이든 온전히 바칠 수 있을 때 그게 다시 내 것이 된다는 것. 그리고 무엇이든 내 우상을 삼는 순간 그것은 내게서 어김없이 떠나간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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