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에 대한 목회적 돌봄-1 / 박노권 교수(목원대학교 신대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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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1-16 14:44 조회86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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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각 배우자에게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을 주고 그들뿐만 아니라 자녀들과 확대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이혼이 사회적으로 그런대로 인정되는 미국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불행이요 삶에 가장 큰 충격을 주는 요인으로 보는데, 하물며 한국 사회에서 그것도 기독교인으로서 이혼은 매우 힘들고 그 충격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혼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있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혼 문제에 대해 목회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이혼에 대한 효과적인 목회적 돌봄을 위해, 먼저 이혼에 대한 분명한 가치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므로 성서적인 이혼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고, 구체적으로 이혼의 문제를 돕기 위해 이혼의 원인이 되는 요소들과 이혼이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 교회에서 돌볼 수 있는 여러 방안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I. 이혼에 관한 성서적 이해
1. 이혼 문제에 대한 성서의 언급
1) 구약성서에 나타난 이혼 문제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 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집에서 나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이혼에 관해 가장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 이 신명기 24장 1-4절에 의하면 남편은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했을 때 아내와 이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 수치스러운 일은 무엇인가? 힐렐 학파는 음란한 일은 물론 ‘음식을 태우는 것’ ‘남편에게 나쁜 평판을 일으키는 것’ 등의 부끄러운 일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했다. 반면에 샴마이 학파는 이 수치 되는 일을 엄격하게 해석하여 이혼할 수 있는 유일한 사유로 ‘간음’만이 해당된다고 하였다. 유대교 회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샴마이 학파의 해석에 따라 간음한 경우에만 아내를 내어 쫓을 수 있다고 하였으나, 실제로 힐렐 학파의 해석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 이혼이란 남녀 쌍방간의 일이 아니라 오직 남성만이 가진 전권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이 수치스러운 일은 당연히 남성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 목회적 돌봄과 상담에서 어떤 문제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필자의 논문 “목회상담에 있어서 윤리의 중요성” 「목회상담학」(대전: 목원대학교출판부, 2003)을 참고. 그러나 이 규정은 본래 이혼이 매우 용이하게 이루어지던 당시의 상황에서, 특히 남성들이 일방적으로 이혼을 제기하는 상황에서, 남성들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인 보장 장치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복음서에 나오는 이혼 문제
(1) 마태복음 5장 31절-32절/누가복음 16장 18절
이혼의 문제가 대단히 첨예한 사회 종교적 이슈들 가운데 하나였던 당시에 예수는 이혼에 대하여 세 가지를 말한다. ①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지 말라 ② 아내를 버리면 아내로 하여금 간음하게 하는 것이다 ③ 이혼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누가복음 16장 18절이 첨가되면 ④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일단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된 사이라면 그 어떠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이혼은 불가하다는 말씀이다. 모든 부부가 완벽한 인간들이거나 아니면 늘 행복한 부부생활을 누리는 것이 아닌 한 이혼을 생각하게 하는 위기의 순간은 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어떠한 위기가 온다 할지라도 이혼만은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내가 음행을 저지르는 경우에는 예외를 두고 있다. 즉 음행을 범한 경우에는 이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간음을 포함한 성적 부도덕함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명령의 강조점은 ‘아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사랑하는 것’에 있다. 당시의 이혼 풍속도를 보면 음행의 연고 없이 이혼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음행 연고 외에는’이란 말은 최소한 음행의 연고 외에는 이혼을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 이혼하는 자는 다 간음에 해당되는 자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누가복음 16장은 바리새인에게 주어진 말씀인데 여기에서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남자요, “버리운 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남자임을 볼 때, 이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 그에 기초한 이혼 풍속은 간음하는 남자들을 양산해 내는 구조임을 비판하신 것이라 할 수 있다.
(2) 마태복음 19장 3-9절/마가복음 10장 2-12절
이 두 본문은 이혼에 대한 바리새인의 질문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에 대한 예수의 답변이다. 예수는 “하나님이 사람을 본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고, 결혼을 통해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고, 그렇게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창세기 1장 27절과 2장 24절을 가지고 답변하셨다. 즉 이혼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모세가 율법에서 이혼을 할 경우 이혼 증서를 주라 명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이고 본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도록 만드신 본래의 창조 질서를 언급하신 이유는, 창조 질서가 깨어져 엉망이 되어 버린 현실의 타락된 질서와 대비시키기 위한 의도에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창조 질서를 깨는 주범이 바로 바리새인들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지적하며,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면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결혼의 의미를 모르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결혼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이혼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예수의 관심은 어떤 경우에는 이혼을 허락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허락이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복원할 수 있겠느냐에 있었다. 현실은 사람들이 이혼을 생각하고 고민하여 시도하고 있지만, 예수의 관심은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회복하는 데 있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께서 이혼의 가능성을 부정한 의도는 무조건 참고 살아야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성경적인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요구가 조건으로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이혼의 불가함을 역설할 수 있는 현실적 근거가 주어질 뿐 아니라, 실제로 이혼을 하지 않는 결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3) 고린도전서 7장 10-15절
대부분의 성경 언급이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여기서는 여인이 남편을 떠나기로 선택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여하튼 당시의 기독교 공동체 안에 속한 부부들도 이혼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을 인용하는 바울의 권면도 역시 이혼은 불가하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하나의 예외 조항을 두는데,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해서 사는 경우, 그 믿지 않는 자가 살기를 좋아하면 함께 살고, 만일 살기를 싫어하면 헤어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믿는 자의 입장에서는 먼저 결혼의 관계를 파괴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박노권 교수님의 논문으로, 박교수님의 허락을 받고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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