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쓰임을 받은 여인들(롬16:1~2) / 박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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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6-02-13 11:16 조회29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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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쓰임을 받은 여인들(롬16:1~2)
박광철 목사(전 조이펠로십교회 담임)
어릴 적에 아버지가 무거운 것을 옮기려고 하시면 내가 돕겠다고 나선 적이 많다. 사실 그건 도움이 되기보다 방해가 될 때가 많았지만 아버지는 “잘하네, 우리 아들.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엄마는 수 십 년간 동네의 반장이셔서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았는데 세 형제 가운데 종종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우리 둘째 아들은 똑똑해서 이런 일도 잘할 거야.” 똑똑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서 추운 날에도 더운 날에도 쏜살같이 달려 나가 심부름을 했다. “아버지와 엄마가 나를 믿으시는구나!”
그뿐 아니라 초등학교 시절에 담임 선생님이 심부름을 시키실 때가 있었다. “교무실에 가서 학적부 좀 가져 와라.” 또는 “학교 앞에 있는 문방구에 가서 그것 좀 사 올래?” 그러면 나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수위실을 지나서 다녀왔다. “선생님이 나를 믿고 일을 시키시는구나!” 그런 마음이다.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귀하고 가치가 있으며 감격적인 일이다. 가장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나를 주의 일에 쓰신다고 하면 싫다고 버틸 사람이 있겠는가? 성경 역사를 보면 수없이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쓰임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훌륭한 여인들이 많다. 그 가운데 네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첫 번째는 하나님께 순종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이다. 그는 나사셋이라는 촌 동네에 사는 처녀로서 요셉이라는 청년과 약혼한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그에게 나타난 것이다. “은혜를 입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마리아는 흠칫 놀라면서 “그게 무슨 인사인가요?”라고 물었다. 천사가 말하기를 “놀라지 말라. 너는 하나님의 각별한 은혜를 받았도다.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텐데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리아는 아직도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정식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아기를 낳는다는 것인지 되물었다.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너와 함께하시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씀에 대한 마리아의 답변을 주목하라.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마리아는 도대체 자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조건 없이 순종한 것이다. 만약 마리아가 천사에게 “그런 엉뚱한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누가 들으면 욕하겠습니다.” 또는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만 말씀하세요.”라고 말하고 돌아섰다면 그의 생애와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는 자신이 처녀로서 임신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 말씀을 믿고 기뻐한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름다운 찬가를 불렀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셨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눅1:47~48). 이와 같이 하나님은 무명씨 즉 이스라엘의 작은 촌락에 사는 평범한 사람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하실 수 있다. 마리아가 예수를 낳게 된 것은 자신의 공로가 전혀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인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의 전적인 순종이 하나님의 기적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가? 나이가 많아 자녀를 갖기에 전혀 불가능해 보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고 또 고향을 떠나라는 말씀이나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아무런 질문이나 반박도 없이 순종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주의 일에 쓰신다.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고 그의 명령을 들을 때에는 지체하지 말고 순종하라.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가 된다.
2. 라합
두 번째는 이스라엘 정탐꾼을 살려준 지혜로운 라합이다. 라합은 여리고라는 도시에 사는 기생이다. 남자들이 아무 때나 그의 집에 드나들고 이미 주위에 소문난 여자로서 그에 대해서는 칭찬이 아니라 손가락질을 하는 대상이다. 그런데 위기를 만나서 그의 지혜로 온 가족을 살린 것이다. 라합은 어떤 면에서 지혜로운 여성인가?
그는 듣는 소문을 근거로 믿음을 가졌다. 무얼 들었는가? 당시에는 전화나 라디오 같은 것이 없던 시대인데 어떻게 세상이 돌아가는 소식을 들었나? 그의 집은 여관 역할도 했기 때문에 외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그리고 성벽 위쪽에 집이 있어서 찾기에 쉬웠고 지나다니는 장사꾼들과 나그네들을 통해 소문을 들은 그는 어느 것도 스쳐 지나지 않고 귀담아 듣고 진위를 파악한 것이다. 라합 혼자만 들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들었다 (수 2:11). “이스라엘 백성이 그 강한 애굽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하였고 홍해 바닥을 걸어서 건넜다더라.” “광야 길에서 40년을 지냈지만 아무도 굶어 죽지 않고 다 살았단다.” “도중에 많은 적들과 충돌했는데 다 이겼단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수 2:11). 그런데 그런 소문을 들어도 다른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거나 “그건 말도 안 돼. 어떻게 바다가 갈라지고 하늘에서 먹을 양식이 비처럼 쏟아지냐? 웃기지 말라고 그래!”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믿음은 들음에서 생긴다(롬 10:17). 매주 듣는 설교 말씀이나 늘 읽는 성경 말씀이 그냥 귀를 스쳐지나가지 않도록 하라.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행동했다.
그때 여호수아는 두 명의 정탐꾼을 여리고로 보내서 상황을 보게 했다. 정탐꾼들은 나그네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으로 알려진 기생의 집을 선택한 것이다. 여관 역할을 겸한 라합의 집에는 원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복장이 다른 외지인이 들어가도 의심할 사람이 없었다. 정탐꾼이 그 집에 숨어들었는데 누군가가 그 사실을 고발하는 바람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 라합은 대책을 세웠다. 그들의 신분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붕 위로 올라가게 하고 마침 지붕에서 말리려고 펼쳐 둔 삼대 즉 아마 줄기들로 그들을 덮어놓은 것이다. 외국인 정탐꾼 즉 스파이를 숨겨주는 것이 들통 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인데 라합은 과감하게 행동했다. 옳은 것을 위해서 그리고 자기 가족의 목숨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건 대담한 행동이다. 하나님은 비겁한 사람을 쓰신 적이 없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만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믿었다.
라합의 말을 들어 보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 2:11). 그는 여리고 사람들이 믿는 우상들을 부인하고 하늘의 하나님을 인정한 것이다. 여리고 사람들은 비를 주고 풍요를 가져온다고 믿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비롯한 여러 신들을 믿었는데,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이 믿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시인한 것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는 갑자기 무당과 점쟁이들이 호황을 맞고 있다고 한다. 대략 80만 명에서 100만 명의 무당이 있다고 하는데 점차 증가 추세라고 한다. 왜 그런가? 세상에 믿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요즘 정치인의 말을 믿는가? 유명하다는 교수의 말도 왜곡된 경우가 많고, 과학자들의 주장도 얼마 지나면 뒤집힌다. 그래서 젊은이들도 점쟁이를 찾아가 미래에 대해서 묻는다. 요새는 컴퓨터로 점을 치는 기계가 있어서 더 쉽게 접근하고 있다. 사람과 기계를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과연 누굴 믿어야 하는가? 하나님을 믿으라.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다해서 그를 의지하라.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들어 쓰신다.
그는 앞으로 살 길을 마련했다. 라합은 지혜로운 여인이다. 정탐꾼을 살려준 대가로 얼마간의 돈을 받은 것이 아니다. 자신과 가족을 살릴 계획을 가졌다. 이제 곧 이스라엘이 여리고로 쳐들어올 텐데 그때 자기 가족을 살려달라는 것이다. 즉 그가 사는 성벽 위의 집 문 밖으로 붉은 줄을 달아 놓으면 군사들이 쳐들어올 때에 그것을 보고 군인들이 그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정탐꾼이 말하기를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대면 그의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수 2:19). 라합은 그들의 말대로 창문 밖으로 붉은 줄을 매달아 놓았다. 동네 사람들은 기생의 집에 달린 붉은 줄을 보고 수군거렸다. “손님을 더 많이 받으려는 표시인가?” “무슨 꿍꿍이속이 있어서 저런 것을 매달아 두었나?”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던 날 밤에 자기들의 집 문에 짐승의 시뻘건 피를 발라 놓은 것을 보고 수군거리던 것과 같다. “흉측하게 저런 피를 발라 놓다니.” “귀신을 쫓는 무슨 새로운 미신이라도 믿는 것인가?” 그들은 어린양의 피가 목숨을 살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 붉은 줄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경은 “피에 생명이 있으니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유일한 살 길이다. 예수님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그래서 예수가 없으면 인생의 길을 찾지 못하고, 예수가 없으면 진리를 몰라서 방황하는 인생을 살며, 또한 예수가 없으면 생명이 없이 죽은 인생을 살게 된다. 이 예수를 더 굳게 믿으라. 그것이 자신과 우리의 자녀들이 살 길이요 하나님께 쓰임 받는 길이다.
그는 비천한 기생의 신분이었지만 결국 예수님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마 1:5). 이것만큼 값지고 귀하게 쓰인 인생이 또 있겠는가? 주 예수의 조상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가! 천대받고 무시당한 이방인인 라합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여인이 되기를 소원하라.
"이하 붙임 파일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