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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노래(호6:6, 습3:17) / 이영복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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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 작성일26-08-14 11:02 조회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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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노래(6:6, 3:17)

이영복 장로(본회 사무국장)

 

들어가며

 

이달 20267월호 <다비다이야기> 회지, ‘우리들의 이야기코너에 실린 두 개의 글을 읽어보셨지요? 하나는 유숙자 자매의 기쁘고 강하고 담대하게라는 제목의 신앙간증문이고, 다른 하나는 박선미 자매의 김영경 작가의 <아버지와 나>를 읽고라는 제목의 수필감상문이죠. 박선미 자매가 서울사이버대학교에서 문학 강의를 들으며 써본 수필감상문이라고 했는데 감상문 대상으로 고른 수필이 김영경 자매가 20232월호 <다비다이야기>에 써서 올렸던 수필이어서 저는 더욱 관심 있게 읽어봤답니다. 김영경 자매가 쓴 수필은 아주 짧습니다. 함박눈이 내리는 새벽, 딸과 함께 장우산을 쓰고 양재천을 걷는 작가의 눈에 든 것은 온통 하얀 눈 세상과 열심히 눈을 치우시던 환경미화원 아저씨 한 분.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눈이 그치고 다시 양재천으로 나갔을 때 다시 보게 된 그 아저씨. 벤치에 앉아 쉬는 바로 그 아저씨에게 겹쳐지는 아버지의 얼굴. 수필은 아버지가 생각난다.”는 말로 끝납니다. 그런데 수필 감상문에서 박선미 자매는 김영경 자매의 수필이 말을 걸어왔다고 했습니다. “선미씨도 아버지 생각이 가끔 나지요?”라고. 박선미 자매는 혀 암으로 오래 병상에 누워 계셨다가 14년 전에 소천하신 아버지를 추억하는 이야기와 함께 아침에 딸이 가게로 나갈 때면 누우신 채로 선미야, 오늘 돈 많이 벌어와. 100만원 벌어와!” 하시던 목소리가 참 그립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자매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저에게도 12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와의 추억 몇 가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아버지를 추억하며

 

저의 아버지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가장 오랜 기억은 네 살 때의 일입니다. 제가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살던 선산군 고아면 초가집의 지붕갈이 작업 중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삼촌들이 지붕 위에서 오전 작업을 마치고 내려와 점심식사를 하시던 도중, 제가 사다리를 타고 아무도 없는 지붕 위에 기어 올라갔던 것입니다. 지붕 위에서 공포에 질려 앞마당을 내려다보며 했던 말, “영복이 죽는다!” 어린 아이가 죽음의 의미를 일찍부터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 상황에서 아버지가 뒷마당에 사다리를 놓고 제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금살금 지붕 위로 올라와 구해주셨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관계된 또 하나의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끓이신 라면을 둘이서 나눠 먹던 기억입니다. 제 평생에 먹어본 첫 라면이자 최고의 라면이었습니다. 그리고 명절 때면 아버지가 저를 공중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몸을 씻겨주시던 기억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고2 때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이 세 개의 추억으로 인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즉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해주셨고 때를 따라 필요한 것을 나눠주시며 죄를 씻어주시는,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잘 연결시켜 주는 추억거리였던 것이지요. 감사하게도 얼마 후 아버지와 어머니도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맏아들이 하나님을 믿기로 했으니 온 가정이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와의 추억 중 가장 감동적인 것은 아버지께서 지금의 제 나이 무렵이셨을 25년 전의 추억입니다. 아버지가 뇌수막종으로 대구 경북대병원에 입원하여 큰 수술을 받으셨을 때의 일이지요. 저는 당시 전주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수술 전날 병원으로 찾아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집에 가시라 하고 1인실에서 아버지와 둘이서 저녁시간을 보냈습니다. 병원에서 수술 중 잘못될 위험이 있는 수술이니 서약서를 작성하라고 해서 제가 설명을 듣고 서명을 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와의 마지막 시간일 수도 있으니 천국 소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유언이라도 하시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을 꺼낼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침묵의 시간이 흐르던 중 아버지가 제게 불쑥 말씀하셨습니다. 950분경이었습니다. “<명성황후> 시작할 시간이다. TV 켜라. 같이 보자.”라고. <명성황후>KBS 수목 드라마로 당시 인기 드라마였고 아버지도 즐겨 보셨던 것이지요. 1시간가량 지나고 드라마가 끝나자 아버지가 제게 하셨던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영복아 오늘 먼길 오느라 피곤할 텐데 불 끄고 자자!”였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TV를 끄고 형광등을 끈 후 아버지 침대 옆에 놓인 낮은 간이침대에 누웠습니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깜박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새벽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들이 병실로 찾아왔고 7시도 되기 전이었는데 병원 직원들이 수술 준비를 해야 한다며 아버지가 누워계신 침대를 수술실로 옮겨갔습니다. 얼마나 서두르는지 아버지, 수술 잘 받고 오세요.”라는 말 외에는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었습니다. 수술을 마치기까지 10시간 이상이 걸렸고 회복실에서 다시 아버지를 뵀을 때는 거의 밤 9시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안도감과 감사의 마음 한 편으로 살짝 서운했던 마음을 아버지께 꺼내 놓았습니다. “아버지, 삼촌들이나 지인들이 병실을 방문했을 때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전도도 하고 유언의 말씀도 하셨으면서 왜 어머니에게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장남인 저에게 남길 유언도 있었을 텐데 왜 <명성황후>나 같이 보자고 하고 불 끄고 자자고 하셨습니까?”라고. 수술 직후라 말씀하시기 불편하셨을 상황에서 들려주신 아버지의 짧은 대답. “영복아, 너를 위해서는 엄마와 함께 매일 새벽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는데 따로 유언을 할 말이 뭐가 있겠노?” 실제로 그로부터 13년 후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시면서도 제게 특별히 남기신 유언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평생 새벽마다 드리셨던 아버지의 기도들이야말로 제겐 최고의 유언이고 또한 최고의 유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육신의 아버지로서, 물론 완전하지는 않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사랑을 알게 해주신 분이셨습니다. 과묵하셨지만 당신의 삶을 통해 나는 네 아버지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해주신 그런 아버지가 늘 고맙고 그립습니다.

 

 

"이하 붙임 파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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